Thursday, December 11th, 2025

‘동탄룩’이라는 욕망의 밈, 그리고 서울이 마주한 글로벌 인재의 역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에서는 경기도 화성의 동탄신도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단순히 부동산 가격이나 신도시 개발 소식이 아니다. 이른바 ‘동탄룩’으로 대변되는 밈(Meme) 문화가 확산하며 동탄은 특정 이미지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이는 국내 신도시가 갖는 독특한 사회적 위상과 욕망을 보여주는 단면인 동시에, 시선을 넓혀보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 처한 글로벌 인재 유치의 딜레마와도 묘하게 연결된다. 국내의 젊은 인구는 일자리와 주거 환경을 찾아 동탄으로 쏠리는 반면, 서울을 찾은 해외의 젊은 인재들은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가는 현상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방주의’를 대체한 신도시의 기호, 동탄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에서 흔히 쓰이던 ‘후방주의’라는 경고 문구는 이제 ‘동탄’이라는 단어로 대체되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열람하기 민망한 옷차림, 특히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은 여성의 사진에는 어김없이 ‘동탄의 소개팅녀’, ‘동탄의 해변’ 같은 제목이 붙는다. 본래 ‘신도시 미시룩’이라 불리던 몸에 밀착되는 의상이 젊은 부부가 많은 동탄의 지역적 특성과 결합하며 ‘동탄룩’이라는 고유명사로 자리 잡은 것이다.

실제 동탄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이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는 실제로는 보기 힘든 과장된 이미지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공원이나 마트 등지에서 실제로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는 증언도 잇따른다. 심지어 온라인 쇼핑몰들은 대놓고 ‘동탄룩’이라는 키워드를 내걸고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는 동탄이라는 도시가 단순히 거주 공간을 넘어, ‘젊음’과 ‘섹시함’이라는 야릇한 이미지가 투영된 상징적 공간으로 소비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퐁탄’이라는 조롱 속에 감춰진 박탈감과 선망

동탄을 둘러싼 담론은 단순한 외형적 이미지를 넘어 사회적 계급과 젠더 갈등의 양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동탄을 ‘퐁탄’이라 비하해 부르기도 한다. 이는 외벌이로 고소득을 올리면서도 가정 내 경제권이나 발언권 없이 가사와 육아까지 도맡는 남성을 뜻하는 ‘퐁퐁남’이 동탄에 많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경제 활동 없이 소비와 여유만을 즐기는 일부 여성에 대한 반감과 고소득 대기업 직장인 남성에 대한 자조가 섞인 표현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욕망과 혐오의 이중주’로 분석한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을 비롯해 외국계 반도체 기업과 연구센터가 밀집한 동탄은 평균 연령 38.4세의 전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다. 안정적인 대기업 직장과 매력적인 배우자, 그리고 신도시의 쾌적한 인프라는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중산층의 표상이다. ‘동탄룩’과 ‘퐁탄’이라는 밈의 이면에는 이러한 이상향에 진입하고 싶어 하는 선망과, 현실적으로 진입 장벽을 느끼는 이들의 박탈감이 뒤섞여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너 동탄 들렸어?”라는 패러디 역시 동탄 주민들의 자부심과 타 지역 주민들의 질시가 충돌하는 지점을 정확히 보여준다.

서울, 화려한 ‘유학의 도시’ 뒤에 가려진 정주 여건의 그늘

국내의 젊은 3040 세대가 일자리와 인프라를 찾아 동탄으로 몰려들며 도시의 활력을 채우고 있다면, 대한민국의 심장인 서울은 국경 밖의 인재들을 붙잡아두는 데 있어 심각한 난관에 봉착해 있다. 동탄이 내부의 욕망을 흡수하며 성장하는 동안, 서울은 글로벌 경쟁력의 핵심인 ‘고숙련 외국인 인재’의 이탈을 막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가 주최한 ‘글로벌 인재 전략 포럼’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영국의 대학 평가 기관 QS가 서울을 ‘세계에서 가장 유학하기 좋은 도시’ 1위로 선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전문가들은 서울이 글로벌 인재들의 ‘경유지’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치안이 좋고 학비가 합리적이라 유학생들이 몰려오지만, 정작 학업을 마친 뒤에는 커리어를 쌓기 위해 다른 나라로 떠나버리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프라를 넘어 ‘사람’을 남기는 도시가 되어야

QS의 제로운 프린센 아시아태평양 총괄 이사는 한국 내 외국인 유학생이 지난 10년간 두 배 이상 급증했으며, 2030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 2위의 유학 목적지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그러나 그는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과연 그들이 한국에 남아 일하고 싶어 하는가, 아니면 기술만 배워서 고국으로 돌아가는가?”

조동성 서울대 명예교수 역시 21세기 도시 경쟁력은 산업 규모나 인프라가 아닌, 글로벌 인재를 유치하고 유지하는 능력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동탄이 삼성전자와 같은 양질의 일자리를 기반으로 국내 젊은 인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듯, 서울 역시 외국인 인재들이 정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정착 비용 절감, 규제 완화, 영어 공공 서비스 확대, 그리고 대학과 기업을 연계하는 과감한 이민 정책 없이는 서울이 글로벌 허브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국내의 ‘동탄 현상’과 서울의 ‘글로벌 인재 유출’은 일자리와 정주 여건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동탄이 국내 중산층의 욕망이 집약된 용광로로서 내부의 에너지를 보여준다면, 서울은 이제 그 에너지를 외부로 확장해 세계의 인재들이 ‘떠나고 싶지 않은 도시’로 거듭나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너 동탄 들렸어?”라는 우스갯소리가 국내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상징하듯, 언젠가 외국인 인재들 사이에서 “너 아직도 서울에 있어?”라는 말이 긍정적인 의미의 유행어가 될 수 있을지, 한국 사회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